| 부부가 함께읽는 부부에세이 제18호 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양재봉 기자 yjb66@nate.com |
| 2021년 01월 20일(수) 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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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지지 않는 방
모두 잠든 시간에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은 고민이 깊다. 남편의 어린나무 가지치기는 내일도 계속되겠지. 초등학교 3학년 외손자가 코로나 시국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서울 제 집에 혼자 두기 딱해 천안 우리 집에 자주 데리고 온다. 그때마다 외가라는 기숙학원에 입교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이 빼곡하다.
첫째, 늦잠은 절대 안 된다. 학교 등교하는 날처럼 일찍 일어나야 한다. 둘째는 일어나는 즉시 씻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든 공부를 해야 한다. 언제나 책이 손에 들려있어야 한다. 셋째는 티브이는 볼 생각을 아예 말아야한다. 넷째, 게임 금지. 다섯째, 유튜브는 지식 확장을 위해서 궁금한 것만 봐라, 여섯째, 놀 때는 밖에 나가서 실컷 놀아라, 그 규칙을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벌칙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회초리보다 더 아프게 들어야 한다. 이런 규칙을 초등학교 3학년 사내아이가 지켜낼 수 있을까, 식물성이 아닌 야생 동물성의 손자에게 이런 규칙이 통할 리가 없다.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그 규칙의 높은 벽을 빠져나갈 틈을 호시탐탐 노린다.
나는 늘 남편에게 손자의 야생성에 대해서 이해시키고, 그 규칙이 너무 과하니 융통성을 발휘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정신을 흐릿하게 한다고 그때마다 되레 내 정신이 번쩍 나도록 호통을 친다.
외가의 기숙학원 원장은 외할아버지다. 내 의견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또 게임을 하다가 들켰나보다. 나는 한쪽 방으로 가서 조용히 머물렀다가, 야단맞고 들어온 손자가 혹여 혼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라도 받았을까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려 준다. 혹시라도 가졌을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주는 마음치유 역할을 내가 담당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도록 이해시키는 일도 한다.
“할아버지는 너를 미워해서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란다. 너를 무척 사랑하신단다. 그리고 저 밖에 있는 소나무를 보렴.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고 우러러 보는 저 푸른 소나무. 네가 볼 때도 멋지지 않니? 저 소나무도 정원사 아저씨가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가라고, 자라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가지를 끊임없이 쳐 주어서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갈 수 있고, 저토록 멋진 모습이 될 수 있단다. 그 가지를 쳐낼 때 소나무도 아팠겠지. 아무리 나무라지만 원망은 안 했겠니? 하지만 그 순간을 참고 견디며 노력했겠지. 그뿐만이 아니라, 소나무 자기 자신도 스스로 반성을 통해 걸림돌이 되는 가지를 자꾸 녹여댔겠지. 다른 나무들보다 멋지게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가고, 멋진 모습인 것은 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란다. 할아버지가 정원사 아저씨 같은 역할을 하는 거구, 너는 아직 어린 소나무인거야. 그리고 너도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잘못한 것을 반성하며 너 자신을 멋지게 가꾸어보렴.”
이런 내용의 말을 손자가 알아듣도록 해준다. 그러면 다소곳 듣고 있던 손자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언제 야단을 맞았냐는 듯웃으며 장난기가 발동한다.
나의 역할은 늘 그렇다. 손자가 웃고, 남편이 웃고, 나도 웃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 힘쓰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밤도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해법을 찾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있다. 손자가 먼 훗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자신을 멋지게 키우려 애쓰셨구나, 진정 알아주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평소에 나는 손자의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 가끔 밖으로 함께 나가준다. 놀이터에서 함께 시소도 타고, 호수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며 말을 주고받는다. 대부분 손자의 얘기를 들어준다. “그래, 그렇구나, 참 좋은 생각이야.” 맞장구를 쳐주면 손자는 신이 나서 목청 높여 조잘거린다. 재미있고, 기특하다. 남편이나 내가 평소 바라보던 그런 철부지가 아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호수까지 가는 길에 나누는 말 중에는 동시에 대한 것도 있는데, 때론 내가 깜짝 놀라며 영감을 받는다. 어떤 때는 손자가 뭘 보고 동시가 떠올랐다고 한번 들어보라며 읊어댄다. 거기서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표현이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둘이서 동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심을 나누고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 문학 동지가 된다. 내가 떠오른 동시를 들려주고 손자에게 평을 듣기도 한다.
친구 같은 할머니로, 친구 같은 선생으로, 같이 노는 친구로, 엄마 같은 할머니로, 그리고 시심을 나누며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 문학 동지 같은 사이로, 이렇게 나는 늘 손자와 마음의 높이를 같이하려 한다. 그러니 시후는 오늘도 나를 목청껏 정겹게 불러댄다.
“할머니! 좋은 생각났어요. 들어보세요. 할머니 이 그림 제가 그렸어요. 어때요? 할머니 나 게임 조금만 하면 안돼요?”
2학년 때 일이다. 할머니가 시인이라고 담임선생님께 얘기를 했나보다. 그래서 학교에 와서 반 아이들에게 동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하는 부탁을 받았다. 그 다음날 강의하러 가는데 손자가 나에게 부탁을 한다. “할머니, 잘해야 돼요.” 몇 번을 강조한다. “알았어. 걱정 마.” 손자 덕분으로 강남**초등학교에서 ‘양윤덕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어린이들과 함께했다. 수업 중간 중간 잘한다고 손자가 엄지 척! 해주었다. 그래서 더 신나게 수업을 열심히 했는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첫 교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났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아쉬워해서 “앙콜!” 수업까지 연장해 그 다음엔 2학년 전 학생 동시 수업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손자에게 또 말보다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을 가르친다. 일테면, 며칠 동안 딸네 집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손자에게 쌀을 꺼내서 쌀 씻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전기밥솥에 쌀을 넣고, 취사버튼을 눌러서 밥을 짓는 방법을 가르쳤다. 스스로 밥을 지어보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그릇에 내놓는 방법, 또 청소기를 돌려 청소하는 방법. 동생이 어질러놓은 거실과 방을 정리정돈 하는 방법이며,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세제를 넣는 양과 버튼 누르는 것을 가르쳤다. 분리수거 하는 방법도 하나하나 함께하며 가르치고, 그 외 음식물 쓰레기며, 쓰레기 버리기, 빨래 개어놓기, 이불 반듯하게 개어 차곡차곡 제자리에 갖다놓기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고 해보도록하며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딸이 제 아들 시후가 놀라운 일을 해놓았다고 전화로 신기해 야단이었다.
나도 기특하고 마음이 좀 놓였다. 이젠 외가에 오는 횟수를 줄여도 될까. 할아버지의 엄격한 규칙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제 집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직은 나한테 오는 것이 내 마음이 더 편해 우리 집에 데리고 온다. 그러면서 언젠가 시후의 엄마인 내 딸이 한 말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아빠가 너무 엄격해서 꾸중을 많이 들을 때마다 원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해보니, 아빠가 그렇게 엄격하게 해 주셔서 사회생활을 칭찬받으며 잘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훗날 외손자도 제 엄마 같은 말을 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엄격함과 할머니의 정서로 먼 훗날 멋진 사나이가 될 우리의 외손자. 밝고 명랑하고 지적으로도 뛰어난 훌륭한 남자가 되어라. 진정으로 바란다. 거실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시후 얼굴을 쓰다듬으며 차낸 이불을 덮어준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함께 시후를 보살피며 가지치기를 잘 해주는 고집쟁이 내 남편이 새삼스레 고마워진다. 잠든 그이 모습도 이 자리에 불러오며, 새벽 5시 30분에 전등 스위치를 끈다.
모두 잠든 시간에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은 고민이 깊다. 남편의 어린나무 가지치기는 내일도 계속되겠지. 초등학교 3학년 외손자가 코로나 시국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서울 제 집에 혼자 두기 딱해 천안 우리 집에 자주 데리고 온다. 그때마다 외가라는 기숙학원에 입교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이 빼곡하다.
첫째, 늦잠은 절대 안 된다. 학교 등교하는 날처럼 일찍 일어나야 한다. 둘째는 일어나는 즉시 씻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든 공부를 해야 한다. 언제나 책이 손에 들려있어야 한다. 셋째는 티브이는 볼 생각을 아예 말아야한다. 넷째, 게임 금지. 다섯째, 유튜브는 지식 확장을 위해서 궁금한 것만 봐라, 여섯째, 놀 때는 밖에 나가서 실컷 놀아라, 그 규칙을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벌칙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회초리보다 더 아프게 들어야 한다. 이런 규칙을 초등학교 3학년 사내아이가 지켜낼 수 있을까, 식물성이 아닌 야생 동물성의 손자에게 이런 규칙이 통할 리가 없다.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그 규칙의 높은 벽을 빠져나갈 틈을 호시탐탐 노린다.
나는 늘 남편에게 손자의 야생성에 대해서 이해시키고, 그 규칙이 너무 과하니 융통성을 발휘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정신을 흐릿하게 한다고 그때마다 되레 내 정신이 번쩍 나도록 호통을 친다.
외가의 기숙학원 원장은 외할아버지다. 내 의견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또 게임을 하다가 들켰나보다. 나는 한쪽 방으로 가서 조용히 머물렀다가, 야단맞고 들어온 손자가 혹여 혼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라도 받았을까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려 준다. 혹시라도 가졌을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주는 마음치유 역할을 내가 담당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도록 이해시키는 일도 한다.
“할아버지는 너를 미워해서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란다. 너를 무척 사랑하신단다. 그리고 저 밖에 있는 소나무를 보렴.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고 우러러 보는 저 푸른 소나무. 네가 볼 때도 멋지지 않니? 저 소나무도 정원사 아저씨가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가라고, 자라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가지를 끊임없이 쳐 주어서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갈 수 있고, 저토록 멋진 모습이 될 수 있단다. 그 가지를 쳐낼 때 소나무도 아팠겠지. 아무리 나무라지만 원망은 안 했겠니? 하지만 그 순간을 참고 견디며 노력했겠지. 그뿐만이 아니라, 소나무 자기 자신도 스스로 반성을 통해 걸림돌이 되는 가지를 자꾸 녹여댔겠지. 다른 나무들보다 멋지게 하늘 높이 꿈을 키워가고, 멋진 모습인 것은 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란다. 할아버지가 정원사 아저씨 같은 역할을 하는 거구, 너는 아직 어린 소나무인거야. 그리고 너도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잘못한 것을 반성하며 너 자신을 멋지게 가꾸어보렴.”
이런 내용의 말을 손자가 알아듣도록 해준다. 그러면 다소곳 듣고 있던 손자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언제 야단을 맞았냐는 듯웃으며 장난기가 발동한다.
나의 역할은 늘 그렇다. 손자가 웃고, 남편이 웃고, 나도 웃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 힘쓰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밤도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해법을 찾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있다. 손자가 먼 훗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자신을 멋지게 키우려 애쓰셨구나, 진정 알아주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평소에 나는 손자의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 가끔 밖으로 함께 나가준다. 놀이터에서 함께 시소도 타고, 호수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며 말을 주고받는다. 대부분 손자의 얘기를 들어준다. “그래, 그렇구나, 참 좋은 생각이야.” 맞장구를 쳐주면 손자는 신이 나서 목청 높여 조잘거린다. 재미있고, 기특하다. 남편이나 내가 평소 바라보던 그런 철부지가 아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호수까지 가는 길에 나누는 말 중에는 동시에 대한 것도 있는데, 때론 내가 깜짝 놀라며 영감을 받는다. 어떤 때는 손자가 뭘 보고 동시가 떠올랐다고 한번 들어보라며 읊어댄다. 거기서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표현이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둘이서 동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심을 나누고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 문학 동지가 된다. 내가 떠오른 동시를 들려주고 손자에게 평을 듣기도 한다.
친구 같은 할머니로, 친구 같은 선생으로, 같이 노는 친구로, 엄마 같은 할머니로, 그리고 시심을 나누며 시적 영감을 주고받는 문학 동지 같은 사이로, 이렇게 나는 늘 손자와 마음의 높이를 같이하려 한다. 그러니 시후는 오늘도 나를 목청껏 정겹게 불러댄다.
“할머니! 좋은 생각났어요. 들어보세요. 할머니 이 그림 제가 그렸어요. 어때요? 할머니 나 게임 조금만 하면 안돼요?”
2학년 때 일이다. 할머니가 시인이라고 담임선생님께 얘기를 했나보다. 그래서 학교에 와서 반 아이들에게 동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하는 부탁을 받았다. 그 다음날 강의하러 가는데 손자가 나에게 부탁을 한다. “할머니, 잘해야 돼요.” 몇 번을 강조한다. “알았어. 걱정 마.” 손자 덕분으로 강남**초등학교에서 ‘양윤덕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어린이들과 함께했다. 수업 중간 중간 잘한다고 손자가 엄지 척! 해주었다. 그래서 더 신나게 수업을 열심히 했는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첫 교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났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아쉬워해서 “앙콜!” 수업까지 연장해 그 다음엔 2학년 전 학생 동시 수업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손자에게 또 말보다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을 가르친다. 일테면, 며칠 동안 딸네 집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손자에게 쌀을 꺼내서 쌀 씻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전기밥솥에 쌀을 넣고, 취사버튼을 눌러서 밥을 짓는 방법을 가르쳤다. 스스로 밥을 지어보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그릇에 내놓는 방법, 또 청소기를 돌려 청소하는 방법. 동생이 어질러놓은 거실과 방을 정리정돈 하는 방법이며,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세제를 넣는 양과 버튼 누르는 것을 가르쳤다. 분리수거 하는 방법도 하나하나 함께하며 가르치고, 그 외 음식물 쓰레기며, 쓰레기 버리기, 빨래 개어놓기, 이불 반듯하게 개어 차곡차곡 제자리에 갖다놓기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고 해보도록하며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딸이 제 아들 시후가 놀라운 일을 해놓았다고 전화로 신기해 야단이었다.
나도 기특하고 마음이 좀 놓였다. 이젠 외가에 오는 횟수를 줄여도 될까. 할아버지의 엄격한 규칙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제 집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직은 나한테 오는 것이 내 마음이 더 편해 우리 집에 데리고 온다. 그러면서 언젠가 시후의 엄마인 내 딸이 한 말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아빠가 너무 엄격해서 꾸중을 많이 들을 때마다 원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해보니, 아빠가 그렇게 엄격하게 해 주셔서 사회생활을 칭찬받으며 잘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훗날 외손자도 제 엄마 같은 말을 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엄격함과 할머니의 정서로 먼 훗날 멋진 사나이가 될 우리의 외손자. 밝고 명랑하고 지적으로도 뛰어난 훌륭한 남자가 되어라. 진정으로 바란다. 거실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시후 얼굴을 쓰다듬으며 차낸 이불을 덮어준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함께 시후를 보살피며 가지치기를 잘 해주는 고집쟁이 내 남편이 새삼스레 고마워진다. 잠든 그이 모습도 이 자리에 불러오며, 새벽 5시 30분에 전등 스위치를 끈다.
양재봉 기자 yjb66@nate.com